Reviewryeok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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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2020
재료 버려진 인형
링크 younyoujin.com
작가 한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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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2020
재료 버려진 인형
링크 younyoujin.com
작가 한유영
제닌 안토니, 소피 폰 헬러만, 소피 칼, 트레이시 에민, 버지니아 울프, 황경신, 마르그리트 뒤라스, 루이제 린저, 프랑수아즈 사강, 두무 알 바카르, 모니카 마론, 윤석남, 셀린 시아마, 공지영, 제인 오스틴, 정세랑, 수전 손택, 천계영, 나혜석, 김명순, 로자 보뇌르의 후예가 되고싶다.
Toy Story
―버려짐의 목격
인형은 과거의 기억을 담고 있다. 어느 시절에, 누군가가 사준, 어떤 장소에서 산···. 인형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 외에는 큰 쓸모가 없는 물체이기에, 오히려 그것을 집 안으로 들였을 때 더 큰 존재로 자리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인형은 기억과 추억이라는 것을 담기에 최적의 사물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Toy Story»는 인형 수십 개의 모습을 담은 사진 연작이다. «Toy Story»의 인형들은 모두 버려졌던 기억을 지니고 있다. 유영은 사람들이 버린 인형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버려짐의 기억을 끌어모은 것이다. 유영은 버려진 인형을 모은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버리는 인형을 모았다. 나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인형에 집착하는 내가 과거의 기억에 얽매인 것 같아 싫었다. 그래서 역으로 추억이 담긴 인형들을 끝도 없이 모아 이 집착을 없애기로 결심했다.”
버려진 인형을 모아 과거를 담은 인형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자 한 모순적인 발상이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본래 인형이 집 안에서 존재하던 방식을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인형들은 큰 쓸모가 없다고 여겨짐에도 여러 집들의 한구석을 차지해왔다. 이런 존재 방식을 물체이기에, 그에 대한 얽매임에서 벗어나려면 오히려 유영이 택한 방식을 취해야 한다. 그들을 가끔 과거의 기억을 되뇌게 해주는 것 외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두지 않고, 그들이 모여 커다란 덩어리가 될 때까지 끌어모아 작업으로서 무언의 쓸모를 부여받은 거대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Toy Story» 속의 인형들은 복슬복슬하고 부드러운 동물의 형상을 하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사진 밖의 우리를 지켜본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지만 꼭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다. 인형들 안에 각기 담긴 사연과 기억들이 무엇일지 유추하게 만드는 얼굴들이다. 그들이 버려진 이유는 그들 하나하나가 지니고 있을 과거의 조각들을 주인이 그만 떠나보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온 시간이 담긴 인형들을 보며 유영은 과거를 떨쳐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면모를 떠올렸을 것이다. 어쩌면 유영은 자신과 달리 인형을 버리고 그것을 떨쳐내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이면을, 그들에게 버려진 인형들을 통해 살펴보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버려진 인형들의 초상을 남기며 그 안에 담겼던 과거의 기억들이 희미해져 가는 모습을 유영은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
«Toy Story»를 만들어가며 유영은 그 집착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었을까. 사진 속 인형들은 이제 그만 그 기억을 떨쳐버려도 괜찮다고, 그것이 사라진 후에도 우리는 잘 지낼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들의 주인만큼이나 인형들 역시 타의로 종속되었던 누군가의 기억으로부터 해방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Toy Story»에 등장한 한 인형의 이전 주인이 그를 발견한다면 자신의 인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것이 나의 인형이었대도 버리기로 한 순간 이후로 나는 인형에 대한 생각을 멈춰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 속 인형과의 인연은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아스팔트 길 위에 버려졌던 인형들이 모인 그 집이 무척 따뜻할 것이란 생각이 스칠 것이다. 이름
―버려짐의 목격
인형은 과거의 기억을 담고 있다. 어느 시절에, 누군가가 사준, 어떤 장소에서 산···. 인형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 외에는 큰 쓸모가 없는 물체이기에, 오히려 그것을 집 안으로 들였을 때 더 큰 존재로 자리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인형은 기억과 추억이라는 것을 담기에 최적의 사물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Toy Story»는 인형 수십 개의 모습을 담은 사진 연작이다. «Toy Story»의 인형들은 모두 버려졌던 기억을 지니고 있다. 유영은 사람들이 버린 인형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버려짐의 기억을 끌어모은 것이다. 유영은 버려진 인형을 모은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버리는 인형을 모았다. 나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인형에 집착하는 내가 과거의 기억에 얽매인 것 같아 싫었다. 그래서 역으로 추억이 담긴 인형들을 끝도 없이 모아 이 집착을 없애기로 결심했다.”
버려진 인형을 모아 과거를 담은 인형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자 한 모순적인 발상이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본래 인형이 집 안에서 존재하던 방식을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인형들은 큰 쓸모가 없다고 여겨짐에도 여러 집들의 한구석을 차지해왔다. 이런 존재 방식을 물체이기에, 그에 대한 얽매임에서 벗어나려면 오히려 유영이 택한 방식을 취해야 한다. 그들을 가끔 과거의 기억을 되뇌게 해주는 것 외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두지 않고, 그들이 모여 커다란 덩어리가 될 때까지 끌어모아 작업으로서 무언의 쓸모를 부여받은 거대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Toy Story» 속의 인형들은 복슬복슬하고 부드러운 동물의 형상을 하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사진 밖의 우리를 지켜본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지만 꼭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다. 인형들 안에 각기 담긴 사연과 기억들이 무엇일지 유추하게 만드는 얼굴들이다. 그들이 버려진 이유는 그들 하나하나가 지니고 있을 과거의 조각들을 주인이 그만 떠나보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온 시간이 담긴 인형들을 보며 유영은 과거를 떨쳐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면모를 떠올렸을 것이다. 어쩌면 유영은 자신과 달리 인형을 버리고 그것을 떨쳐내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이면을, 그들에게 버려진 인형들을 통해 살펴보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버려진 인형들의 초상을 남기며 그 안에 담겼던 과거의 기억들이 희미해져 가는 모습을 유영은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
«Toy Story»를 만들어가며 유영은 그 집착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었을까. 사진 속 인형들은 이제 그만 그 기억을 떨쳐버려도 괜찮다고, 그것이 사라진 후에도 우리는 잘 지낼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들의 주인만큼이나 인형들 역시 타의로 종속되었던 누군가의 기억으로부터 해방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Toy Story»에 등장한 한 인형의 이전 주인이 그를 발견한다면 자신의 인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것이 나의 인형이었대도 버리기로 한 순간 이후로 나는 인형에 대한 생각을 멈춰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 속 인형과의 인연은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아스팔트 길 위에 버려졌던 인형들이 모인 그 집이 무척 따뜻할 것이란 생각이 스칠 것이다.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