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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in Name ist Adolf Eichmann





Reviewryeok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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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2019
크기 219×297mm
재료 종이에 1도 인쇄

작가 노경태
대지 위에 올라갈 1차적인 재료들은 손으로 만드는 방법을 선호한다. 필름 사진과 낙서 같이 취미와 작업의 경계가 모호해서 재밌게 작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Mein Name ist Adolf Eichmann
비범한 악을 만드는 평범한 이름에 대하여

인간에게는 이름이 있다. 이름은 인간을 타인과 분리되고 독립된 존재, 세상 여느 것과 다른 ‘나’라는 존재로 만들어준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게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기억하고, 부르는 것은 인간들이 아는 한에서는 그들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행위이다. 심지어는 인간들 서로에게만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생물, 사물, 감정과 사유에까지 이름을 붙여 그것을 명명한다. 그들의 죽음 이후 묘비에 남는 것도 바로 이름이다.
      그러나 이처럼 인간을 유일무이하게 만들어주는 듯한 이름은, 한곳에 뭉쳐 뒤섞여버렸을 때는 줄줄이 이어진 하나의 텍스트로 남을 뿐이다. 대학강의의 출석부, 취업시장의 예비인력 명단, 은행이나 공공기관의 대기자 명단 같은 것들을 떠올려보자. 그곳에 적힌 이름들은 어떤 편의성을 위해 분류되어 기록되어 있다. 이름 적힌 사람들 개인의 성격이나 외관 등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라는 주체성을 갖게 해주고 그토록 중요한 것 같던 이름마저도, 어떠한 관례에 의해 쉽게 무시할만한 것이 되어버리는 모습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우리 모두처럼 하나의 이름을 가진 이가 있었다.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Mein Name ist Adolf Eichmann»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그의 삶을 언급하며 이야기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 대한 사유를 시작한다. 그는 정말 희대의 악인이었는가, 혹은 남들과 같이 하나의 이름을 갖고 자신이 몸담은 곳에 적응해버린 평범한 인간이었는가.
      사건으로서의 아이히만과 그에 대한 아렌트의 견해를 세심히 최소한으로 발췌한 1장을 지나고 나면, 현재의 사유에 대한 저자의 의문이 시작된다. 2017년을 배경으로 한 2장에서는 일명 ‘마르타사건’이 용납하기 어려운 판결을 받는 데에 가담한 사유하지 않는 평범한 악인들을 그린다. 2장 내내 반복적으로 왜곡되고 찌부러진 이름들이 등장하는 이유를 만화의 끝 무렵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그 이름들은 우리가 애써 찾아보지 않는 이상 어딘가 있을 법한 이름이라는 계속해서 익명성에 가려져 있을 것이다. 이 이름들이 그런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반복적으로 있었던 이러한 사건에 대해 인간들이 사유하기보다는 무뎌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당신의 이름은 그렇다면, 이곳에 적히지 않는 것이 당연했던 것일까?
      3장은 2054년이라는 가까운 미래를 그린다. 환경오염으로 바퀴벌레를 취식하고 사는 인간들의 처절한 삶의 이유는 역시 만화의 마지막에서 밝혀진다. 괴기하게 보이는 이 행동은 만화 속 등장인물에게는 익숙한 듯 보이고, 이 상황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늘 그럴 거라, 늘 문제없을 것이라 믿어왔던 것이 한순간에 뒤바뀌어 버리고 그것에 적응하게 되는, 코로나19와 같은 것 말이다. 2020년을 다루는 4장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무사유(thoughtlessness)는 인간이 초래한/초래할 재난에 대한 숨 막히는 질문들과 함께 등장한다.
      사유하지 않는다 하여 누군가를 탓할 순 없다. 하지만 그것이 평범성으로 치부된다면 초래할 커다란 악을 우리는 역사와 근래의 사례들에서 찾아보았다. «Mein Name ist Adolf Eichmann»은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 안에 숨어있는 스스로 정당화할 수 ‘있는’ 악의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얻은 그 이름까지 평범함과 관례 속에 합리화하고 숨겨버릴 것인지 질타한다. 큐리